정부의 차별시정 안내서 마련에 대한 경영계 입장

2007. 6. 3

 작년말 국회를 통과한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 및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를 도모하자는 것이었으며, 결국 일자리 확대를 통해 우리 고용시장을 선진국 수준으로 변모시키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노동계 의견을 그대로 수용한 후속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비정규직 보호라는 명목하에 기업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으로서 우리 고용시장 자체를 왜곡시키고 일자리 감소만을 초래할 뿐이다.
 
 특히 정부가 마련한「차별판단기준」은 산업현실과 임금구조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서, 우리 경영계는 향후 예상되는 산업 현장에서의 혼란과 기업 부담에 대해 심각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경영계는 정부의「차별판단기준」마련과 관련하여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함을 지적하면서, 향후 제도 운영시 다음과 같은 점이 반영되어야함을 밝혀 둔다.
 
 첫째, 정부가 차별판단에 대한 공식적인 기준을 제시한다면, 결국 이러한 기준은 개별 사건에서 획일적·경직적 판단을 강요하게 된다.
 
 정부는 차별시정위원회의 판단에 도움을 주기 위해 기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일단 정부의 기준이 나오게 되면 산업현장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획일적이고 경직된 판단 기준으로 굳어질 수밖에 없다.
 
 차별이라는 문제는 시각이나 환경, 관행 등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며 객관성과 공정성 시비가 지속적으로 제기될 수 있기 때문에, 당장 어떤 획일적 기준을 적용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우려 때문에 영국, 독일 등 유럽 선진국들에서도 상당 기간동안 개별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례 축적을 도모하였으며, 이렇게 마련된 다양한 사례와 판단들이 하나의 기준으로 정착되어왔음을 인식해야 한다. 
 
 둘째, 차별판단은 기업의 현실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직무분석이나 직무평가의 도입이 보편화되어 차별판단에 대한 공정성이 확보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대부분 연공급 중심이며 직무급 등의 임금체계 도입은 사실상 미미한 현실이어서, 차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결여되어 있음을 정부는 간과하고 있다.
 
 이와 같이 차별 여부에 대한 합리적 판단을 기대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충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획일적 기준을 설정하려는 것은 혼란을 자초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셋째, 차별 판단의 대상은 핵심적 근로조건에 한정하여 명확히 설정되어야 한다.
 
 모든 근로조건이나 요소들이 차별의 판단 대상에 포함된다면 오히려 불명확성으로 인한 노·사간의 갈등과 혼란만이 증폭될 뿐이어서, 노·사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자녀학자금·경조사비 등 각종 비법정수당들은 장기근속에 대한 보상, 독려 등 개별 근로자들에 대한 ‘속인적 요소’들이 고려된 것으로서, 차별의 관점에서 획일적으로 비교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더구나 차별 여부의 판단 범위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조건에 한정하며,법에 규정되지 않은 각종 복리후생사항들은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이 당초의 입법취지였으며 노사정 또한 이에 합의한 바 있는데(2005.12,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러한 입법취지는 반드시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공정한 차별판단을 위해서는 업무의 동종·유사성의 조건이 정확히 일치되어야 하며, 비정규직 보호의 논리에 치우쳐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차별 판단의 본질상 비교대상 선정 등의 문제에 있어서 주관적 요소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합리적인 차별 판단은 비교분석을 통한 조건의 동일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업무의 동종·유사성에 대한 판단을 비정규직 보호의 논리에만 치우쳐 해석할 경우, 기업의 신뢰를 얻을 수 없음은 물론이고 공정성 시비가 계속 제기될 것임은 명백하다.
 
 다섯째, 차별여부 판단에 있어 업종의 특성을 고려하여야 한다.
 
 업종의 특성 및 사업장의 상황에 따라 기업의 인력운영은 각기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러한 특성에 대한 면밀한 사전 검토나 이해 없이 일률적인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차별 해소라는 본래의 목적은 요원할 뿐이다
 
 따라서 정부는 차별시정위원회가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기 전에 업종별 인력 운영의 특성을 이해하고, 반드시 이를 반영한 탄력적인 방안 마련을 고려해야할 것이다.

 끝으로 산업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기준 마련은 오히려 일자리 감소라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당초의 입법취지와 달리 기업의 경영상황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획일적인 정책을 추진할 경우, 이를 감당할 수 없는 기업들로 인해 기간제근로자의 일자리는 필연적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에 정부는 감시·단속적 근로자들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이들에 대해 최저임금을 적용하도록 한 결과, 수 많은 아파트 경비원들이 일자리를 잃게된 정책적 오류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이 경영계는 정부의 성급한 차별판단기준 마련이 우리 노사관계에 엄청난 혼란과 악영향을 끼칠 것임을 우려하면서, 정부가 당사자의 신뢰 및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를 촉구한다.
 
 특히 법원에 의한 사례 축적을 통한 자연스럽고 단계적인 해결만이 시행 초기에 발생하는 갈등과 혼란을 예방하는 최우선의 길임을 정부가 인식하기 바란다.

* 첨부 : 노동부 「차별시정제도 안내서」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