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최 재 황(한국경영자총협회 정책본부장)

독일 등 산별노조체제가 확립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나라들에서 요즘 산별 체제가 서서히 약화되고, 기업별로 노사관계를 결정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 노조들은 기업별노조체제를 의도적으로 버리고, 산별노조로 전환하는 것만이 유일한 살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노동계의 산별노조로의 전환 시도가 진정으로 기층 노동자들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소수 지도층을 위한 것인지 하는 산별전환의 목적에 대한 문제, 기업단위 지부들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고 과연 산별건설이 가능할 것인지 하는 산별건설 방법에 대한 문제, 산별노조 건설이 기업노사관계의 발전에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인지 하는 산별노조의 영향에 대한 문제 등 어느 하나 명쾌하게 설명은 없다.

노동계는 명확한 설명 없이 맹목적으로 산별노조를 밀어붙이기만 할 것이 아니라 다음 몇가지 사항에 대해 분명한 문제의식과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

우선, 애초에 노동계가 설명했던 대로 산별교섭 확대가 교섭비용 절감과 교섭기간 축소 등 교섭제도 개선에 기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섭구조를 과감히 단순화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기업단위 지부의 기득권 포기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산별교섭도 요구하고, 지부교섭도 요구 하고, 산별협약을 지부교섭에서 멋대로 번복하는 행태를 반복하면서 산별노조 건설을 부르짖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두 번째, 소수 운동가 계층의 이념적 지향에 맞춰 근로자들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이 파업을 하는 목적은 근로조건 유지․개선과 관련한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한 목적이 없는 정치파업과 이념파업은 현행법상 불법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금속산업연맹 소속 일부 사업장들의 산별 전환이 결의 되자마자 한․미 FTA 저지를 목적으로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날짜를 못 박아 공언했다. FTA 저지 파업과 같은 정치파업이 근로자들의 근로조건 유지․개선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소위 운동가들의 이념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인지 진지하게 새겨보아야 한다. 세 번째, 노동계 스스로 자정능력을 가져야 한다. 산별노조는 기업별노조에 비해 위원장을 비롯한 집행부의 권한이 막강하고, 특별한 견제세력이 없어 현장 근로자들과 유리된 채 권력화 할 위험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 노동계 지도부의 각종 부패와 비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뚜렷하게 나아지고 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 운동가 계층이 그대로 산별노조 지도부로 옮아가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제 노동계가 산별노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별노조체제로의 전환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우리 노동계가 시대를 역행하는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무엇 때문에 산별노조로 꼭 전환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노동계 내부에서의 진지한 성찰이 더할 나위 없이 아쉬운 시점이다. 그것조차 안된다면, 최소한 제대로 된 산별노조를 건설하려는 노력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